#07_국가 정책 및 산업 동향과 서비스 디자인의 상관 관계

[국가 정책 및 산업 동향과 서비스 디자인의 상관 관계]
‘서비스 디자인은 국가별 산업/정책 성향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게 드러난다’
= ‘성공적인 서비스 디자인 사례를 만드려면 국가별 산업/정책에 기반해야 한다?’ 
01.가설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통한  혁신 사례들은 이제 막 하나둘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일부 예로만 이런 가설을 세우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국가별로 지향하는 산업 모델이나 정책 성향에 따라 서비스 디자인의 형태도 다르게 나타난다’ 라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봅니다. 어쩌면 뻔한 가설일 수도 있고, 짧은 지식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단편적인 이야기라 살점이 될만한 피드백들을 기다려 봅니다.
02-1.영국과 미국의 사례 비교
영국의 경우 NESTASNOOK등의 시회 혁신 민간 단체와 Design Council 등과 같은 정부관계 부처의 협업으로 ‘공공 서비스 디자인’의 혁신 사례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80년대 대처리즘을 통한 폭발적인 경제 성장 이면의 복지 정책 붕괴와 철도 민영화를 통한 실패등의 사회적 배경이 그러한 서비스 디자인 동향의 중심에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여담으로, 한국은 그 즈음의 영국과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듯 합니다.) 과거 정책적인 실패 사례를 서비스 디자인과 연계해서 극복하려는 모습이 가장 도드라지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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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서비스 디자인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에어비엔비’나 ‘우버’등 스타트 업 비즈니스를 통한 사례 처럼 좀 더 상업적인 영역( 좀 더 정확히는 온디맨드 서비스)에서 서비스 디자인의 역할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IDEO의 브랜딩에 힘입어 디자인 씽킹을 통한 비즈니스 성공사례로도 많이 소개되는 편입니다. 한편, 디트로이트주의 파산 이나 복지 정책에 대한 지방정부의 무능력함에 대응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Community Enterprise(국내, 마을기업의 개념?)나, 각종 비영리 Organization의 형태를 통한 활동들에서 서비스 디자인의 중요 요소인 Participatory Design의 방법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지역사회의 ‘연대’를 기본으로 한 활동이란 점에서 스타트업 비즈니스와는 다른 성향의 모습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로 부터의 혁신이 활발한 곳들은 국가 시스템에 그 만큼 문제가 많은 곳들 일 수록 극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그리스의 사례[Link참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한국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계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움직임이라 미국만의 흐름으로 단정 짓기는 힘듭니다. 어쨌든 미국은 스타트업 만큼이나 아래로 부터의 혁신 운동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나라중 하나임은 틀림 없습니다.
02-2.영국과 미국의 헬스케어 서비스 디자인 경향 비교
잠깐 영국과 미국의 국가별 성향을 살펴보면, 서비스 디자인 뿐만아니라 전반적인 혁신 키워드에서도 각광 받고 있는 ‘헬스케어’ 측면에서도 두 나라의 서비스 디자인 흐름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각종 부작용 끝에도 여전히 공공 의료 시스템이 잘 자리잡고 있어서, NHS(의료보험공단 격)을 통한 공공 의료 서비스 디자인 개선 -폭력사고를 줄이는 응급실 서비스 디자인등- 에 대한 성공적인 사례들[LINK참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영연방인 뉴질랜드의 경우에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노선에서 수년 전부터 공공 의료 서비스 디자인 개선[Link참고]에 심여를 기울여오고 있고, 전문가들로 부터 우수한 서비스 디자인 사례로 인정[Link 참고]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 보다 고급화되고 커스터마이징된 민영 의료기관인 ‘메이요 클리닉’ 같은 사기업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통한 혁신 사례들[Link참고]을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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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적으론 둘다 ‘공공 서비스 디자인’으로 묶어 볼 수 있지만, 엄밀하게는 누구나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 서비스의 개선’과 사용자의 소득격차에 따라 장벽이 생기는 ‘사기업 서비스의 고급화’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평준화된 사회 보장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영국의 사례, 그리고 평준화와는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며 서비스 고급화를 지향하는 미국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같은 혁신이지만 지향하는 바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 더 나은 방향인가에 대한 대답은 어려워 보이지만, 최소한 나라마다의 ‘정책과 산업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서비스 디자인의 성과와 방향이 다르게 나타난다’것은 알 수 있습니다.
03.오스트리아의 서비스 디자인 경향
그렇다면, ‘그 외의 나라는?’ 이라는 질문에 스스로도 꾸준히 물음표였는데, 그 만큼 아직은 영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 및 미국 외에는 서비스 디자인 경향이라고 할만큼 눈에 띄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운좋게도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들을 진행하면서, 오스트리아의 경우 사회 복지 정책 외 ‘관광산업’에서 그 모습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있는 MCI 매니지먼트 스쿨의 Entrepreneurship & Tourism석사과정[Link참고]의 2010년 발표된 학술논문 중 ‘관광 산업 중소기업을 위한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 for tourism SMEs, [Link참고])에서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한 학술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고, 2014 서비스 디자인 비엔나 컨퍼런스에서 소개된 오스트리아 철도청 ÖBB의 사례(독일어라 정확히 캐치는 못했습니다. ㅜㅡㅜ [Link참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한 사례라곤 볼 수 없지만, 2000년 오스트리아의 케이블카 터널 대화재에서 150여명에 다다르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인재를 겪은 후, 케이블 카 관련 전문 교육 기관 개설 및 전반적인 서비스 시스템 개선[Link참고]을성공적으로 이뤄냅니다.대형사고로 인해 존망조차 불투명했던 케이블 카 산업을 15연 사이에 수조원의 수익이 발생하는 관광산업의 핵심 분야로 전환시킨 것은 오스트리아의 주요산업인 ‘관광 산업’에 전반적인 ‘서비스 시스템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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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할라인의 케이블카 시스템 전문 교육기관, 이미지 출처:www.seilbahn.net>
04.국가 정책 및 산업 동향과 서비스 디자인의 상관 관계
이러한 국가별 (유사) 서비스 디자인을 통한 사례들이 시사하는 바는 국가정책/산업 동향에 따라 서비스 디자인이 효율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비즈니스 측면이나 사회 혁신 측면 모두를 충족 시켜주는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국가별 경제,정책,사회,산업 등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어야, 해당 국가에 적합한 서비스 디자인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비즈니스 측면의 혁신’과 ‘지역 연대의 혁신’이라는 것들이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서비스’를 특정 국가에만 한정지어서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디자인에도 나라마다 ‘잘 들어맞는 분야’가 분명 존재하고, 어떤 산업/정책과 어울렸을때 시너지가 되느냐, 마이너스 시너지가 되느냐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Bottom up 방식의 서비스 디자인을 응용해서 어떤 환경이나 어떤 나라에서도 기존 시스템을 뒤엎을 수 있는 접근법이 있다면 최고겠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기름이 나지도 안는 곳에서 삽질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 시작해본 가설입니다.
예제들을 보면 알수 있듯이 복지 선진국으로 갈수록 의료나 공공재들에 대한 서비스 디자인 개선에 활발한 논의와 직접적인 실천이 이뤄지고 있고(영국외에도 핀란드, 덴마크등..), 과도한 복지로 인한 질적인 저하의 문제에 대한 개선을 직접적인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해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예산 감축이나 정책 범위 축소가 아닌, 본질적인 서비스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과 효율성 개선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복지 선진국들의 복지 예산은 감축이 아니라 ,서비스 개선을 통한 비용의 절감으로 바라보는 쪽이 상대적으로 복지 후진국에 속하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에서 가져야할 올바른 시선으로 보입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의 헬스케어 서비스 디자인 흐름의 차이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의료,교통등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인프라스트럭쳐는 국가 정책 방향에 따라  ‘공공재 서비스의 개선화’‘사기업 서비스의 고급화’라는 두가지 방향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선택에 대해 국민들의 많은 관심 또한 필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저는 ‘공공재 서비스의 개선화’를 보다 지지합니다,^^;)
05.한국의 서비스 디자인이 가야할 길
영국 대비 공공 의료기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선 미국처럼 기업 병원 위주의 고품질 헬스케어 서비스 개선으로 이루어지려는 움직임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한편, 미국 대비 우수한 의료보험 제도는 헬스케어 서비스 디자인의 방향성과 별개로 아직은 공공의료영역을 보호해주는 훌륭한 장치지만, 미국이나 영국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해 관계를 형성시키고, 의료부문의 민영화에 대해서도 좀 처럼 명쾌한 답을 찾기 힘들어 보이게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은 공공재에 대한 서비스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지 않다’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것은 작년 한해동안 정부3.0 과제로 디자인 진흥원 및 관계 에이전시들과 관계 부처들이 진행하고 있는 공공 서비스 디자인 개선 사업들[Link참고]을 보면, 정부의 공공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개선 의지를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라 고무적이기도 합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영국,미국,오스트리아등 “서비스 디자인이 ‘날개’를 다는 지점은 각각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산업 동향 부터 복지 정책에 이르기까지 나라마다의 특성을 최대한 살렸을 때이다”라는 점인데, 과연 한국은 그 방향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은 듭니다. 현재의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 정책의 노선을 비추어 보면 앞으로 공공 서비스 디자인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공공영역 외에도, 미국의 온디맨드 서비스 스타트업들에서 보여지는 비즈니스 혁신을 포함한 서비스 디자인 방법론을 활용한 사례들을 한국에서 아직은 이렇다 하게 찾아 볼만한 예가 없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국내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서비스 디자인을 활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모델인걸까?’ 라는 질문과 동시에, ‘어떤 비즈니스 모델에 서비스 디자인이 날개를 달아줄까?’ 라는 질문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민속촌에서 보여주는 거지나 구미호 아르바이트 처럼 유쾌함이나 해학에서 그 출발을 찾아야하는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미국 처럼 스타트업 비즈니스와 마을 기업 성향의 혁신 활동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을 가만하면, 국내에서 서비스 디자인이 날개를 달수 있는 특정 산업을 한정 짓는 다는 것은 무리수 일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마을기업과 같은 연대기반의 혁신활동에 서비스 디자인이 적극 활용되서, 밑에서 부터의 bottom up 방식의 혁신으로 국가 복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UNIST의 백준상 교수님의 랩[Link 참고]에서 활동하는 방향성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농사펀드[Link참고]등과 같은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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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잠정적 결론
해외에서 PSSD를 전공한 외국인 친구도 한국은 영국 다음으로 서비스 디자인 에이전시도 많고(?), 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고, 한국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만큼 역동성은 영국못지 않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속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화력을 어디로 집중하는 것이 좋을까? 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현재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좋은 결과들로 잘 이어져야 지속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처럼 복지나 사회 전반의 정책적인 움직임이 서비스 디자인과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성공적인 기업형 서비스 디자인 사례도 보기드문 편이고, 겨우 신규 서비스에 대한 소개에 서비스 디자인이 포장되는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은,’수요자 중심 공공정책을 위한 공공서비스디자인 모델에 관한 연구’[Link참고]와 같은 논문도 발표되고 있는 만큼, ‘한국 서비스 디자인의 화력, 어디로 집중해야하나?’라는 주제와 같은 학술 논문을 산업 영역이나 정책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누군가 작성해주길 기대해봅니다’로 허무맹랑하게 맺어 봅니다.^^; 동시에 국가의 복지 정책이 어디로 향해야하는지도 영국과 미국의 서비스 디자인이 향하고 있는 사례들을 예로 들어서,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공익’적인가도 유추해준다면 금상첨화일듯 합니다.
서비스 디자인의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한 영역인 ‘복지 정책’에 있어서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북유럽을 포함한 많은 유럽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복지 정책의 한계를 ‘공익’의 차원에서 보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경우 자본주의의 문제를 자본주의가 가진 장점만을 이용해, 스스로의 단점을 극복해보려는 시도(공유경제를 표방한 온디맨드 서비스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동시에, 전자,후자 모두 국민이 중심이 된 지역기반의 NGO 및 비영리 활동을 통한 ‘연대’ 운동은 계속해서 커지는 경향이며, 넓게는 독일의 pegida 같은 불편한 운동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전반적인 분위기는 미국과 흡사한데, 솔루션을 미국처럼 가는 것이 반달리즘이나 천민 자본주의가 언급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적합한가 라는 의문이 들며, 그렇기에 ‘어디에 서비스디자인의 화력을 집중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 점에서도 유효합니다.
더불어 서비스 디자인의 실천과 성공사례 빌딩에 있어서, 퍼실리테이터 양성이나 방법론 교육과정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흐름도 있는데, 앞서 언급한 ‘삽질’을 피하기 위해서는,’전반적인 국내 서비스 디자인의 산업 흐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립하는 활동들도 중요하지 않나’ 는 생각이 많이드는 요즘입니다.
정보나 소식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에 있어서도 ‘ㅇㅇ억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급성장하는 기업’같은 슬로건으로 자본적 가치만을 다루는 스타트업/ 테크 기반의 소식들만을 다루는 미디어들이 있는 반면, 비교적 한정적인 네트워크의 SNS 채널을 통해서 일부만 똘똘 뭉친채로 ‘우리는 착해요’로만 일관하고 있는 사회 혁신 분야만을 다루는 미디어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는데, 양쪽 방향의 혁신 흐름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통합 미디어 채널의 필요성도 느껴집니다.
07.마무리..
이글의 내용은 몇년간 머리속에 떠도는 이야기를 최근에 조합된 생각으로 정리해본 것으로 팩트에 대한 정보가 부실할 수 있고, 가설 또한 억측일수 있음을 다시한번 밝혀두며, 많은 피드백을 기다려봅니다.

#06_Tactical Urbanism : 전술적 공공 디자인

About Tactical Urbanism ; ‘전술적 공공 디자인’에 대해서

지난 주말 동안 여러 미디어에서 서울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소식들이 들려 왔습니다. 네덜란드의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 RTM100에서 영감을 받은 정성빈 님의 ‘서울 100′ 프로젝트[link]’,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의 ‘LOUD프로젝트 [link]’가 바로 그것입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요약하자면, 시민들이 공공장소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즉각 즉각 아이디어를 실천해보는 프로젝트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실천형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지자체나 정부 주도의 공공 디자인과 이런 프로젝트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간단히 정의 하자면, 지자체및 정부 주도의 공공 디자인은 전략적(Strategic)으로 이루어 지는 반면에, 이런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들은 전술적(Tactical)으로 이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략 (Strategy)은 = 무엇을 할 것인가(What To),
전술(Tactics)은  =  어떻게 할 것인가(How To)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인용 link]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전략은 계획에 해당하며,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변동이 거의 없는 규칙과도 같은 반면, 전술은 실천에 해당하며,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언제든지 현장에 적용해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얼마 전 서울의 버스 정류장을 모두 다니며 화살표 [link] 를 붙였던 이민호님의 프로젝트나, ‘껌 프로젝트 [link]’를 진행했던 김형철님의 프로젝트등도 앞서 예를 든 두가지 프로젝트와 같은 ‘전술적 공공 디자인 (Tactical Urbanism) 프로젝트’ [1]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철저한 계획하에 ‘전략적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를 실행 해야하는 지자체나 정부의 입장에선 전술적 공공디자인은 시간,비용,정책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 지자체와 정부 중심의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는 완료 후 수정 보완의 단계 없이 장기간 방치되기도 하며, 시민들의 민원을 감내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수년째 반복하고 있습니다.

The circle of tactical urbanism (in Hamilton, this is a U-shape) http://www.raisethehammer.org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위의 도표의 예시와 같이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전략과 전술이 순환되는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런 시민 주도의 전술적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의 등장은 지자체의 전략적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더 우수한 전략/전술적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가 탄생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밑거름이 되는 프로토 타입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례로 현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전략/전술적으로 세계 최고의 자전거 도시가 되는데는 1970년대 초등학생들이 도로를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특정 구역을 점거했던 전술적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들이(-하단 영상 참조-) 촉진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De Pijp, Amsterdam 1972 ]
<전술적 공공 디자인의 사례 및 분류>
전술적 공공 디자인의 실천에 있어서, 어떤이들은 Gamification(게임화)을 통해 접근하기도 하고, 플래시 몹, 행동 변화 유도를 유발하는 공공장소 해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2] 더 나아가서는 오픈 데이터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응용하는 사례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그 모습은 정치에 대한 비판이나 반사회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의사를 표시하는 비폭력적인 훌륭한 표현수단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회 참여 활동을 카테고리화해서 특정 용어로 정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전술적 공공 디자인은 국외에서도 디자이너,건축가,음악가,예술가 등 고립된 자아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함께 연대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공공 예술/디자인 전반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Traffic Light Lets You Play Pong ]
01.게임화(Gamification)를 통한 전술적 공공 디자인
위의 예제는 독일의 Hawk대학의 인터랙션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신호등에 설치한 디지털 탁구 게임이며, 건너편의 사람과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게임을 하게 해준다는 표면적인 내용 이외에도, 무단횡단을 줄이는데 기여 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입니다. 다른 예로 한 자동차 회사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로 진행 되었던 The Funny Theory [ link ], The Dancing Traffic Light [link], 동유럽에서 진행된 팔레트 스케이트 프로젝트 [link] 등도 게임화(Gamification)를 활용한 전술적 공공디자인의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주로 광고 프로모션에서 활용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 Leónidas Martín en Creativetime Summit (2012) ]
02.플래시 몹(Flash mob) , 비폭력 시위 (Nonviolence Protest)를 통한 전술적 공공 디자인
위의 예제는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New media 및 Political Art를 가르치고 있는 레오니다스 교수의 프로젝트 발표 영상입니다. 이번 학기 Social Design 코스의 초빙 강사로도 초대되어 유사한 발표 자료와 워크샵을 진행했었는데, 상당히 인상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영상의 5분40초부터 소개되는 프로젝트는 2011년 스페인의 최대 규모 방키아 은행의 파산을 정부가 구제 [link] 하면서, 230억 유로라는 사회비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을 플래시 몹으로 표현한 것 입니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방키아 은행의 계좌를 해약하는 고객을 여러 무리가 따라 들어가서 계약을 해제하는 순간, 갑자기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파티를 엽니다. 그리고 경찰이 오기 전에 파티를 끝내고, 합법적(?)으로 은행을 다시 나서는 식입니다. 이런 플래시 몹이나 비폭력 시위를 활용한 전술적 공공 디자인의 다른 예로,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기 위해, 참가자들이 헤드폰을 쓴 채 침묵의 축제를 벌이는 Silent Climate Parade [link], 세월호 사건 이후 답답한 심정을 광화문 광장에서 물과 대붓으로 글로 적어 내려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 [link],  청계천 물고기들의 떼죽음을 물과 스텐실로 풍자한 Water Drawing Performance [link], 그리고 전 세계의 이런 사례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일상의 반란 (Every Rebellion) [link] 등이 있습니다.
[ Sesame Street: Air Bear ]
03.공공장소 해킹 (Hacking public space)을 통한 전술적 공공 디자인
위의 예제는 뉴욕의 사진가 Joshua Allen Harris가 진행한 프로젝트 [link] 이며, 버려지는 비닐 봉투들을 조합하여 지하철 환풍구에 펼쳐 두면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바람에 의해 부풀어 오른 비닐 봉투가 동물의 형상을 띄면서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앞서 소개된 서울100, LOUD, 버스 노선 화살표, 껌 프로젝트 등도 이런 공공장소 해킹에 속하는 전술적 공공 디자인으로 볼 수 있으며 많은 곳에서 실행 중인 커뮤니티 가든 [link] 이나 게릴라 가드닝 [link] 도 일종의 공공장소의 해킹으로 볼 수 있습니다.
[ The architecture of protest | Diana Contiu | TEDxViennaSalon ]
그 밖에 2014년 전술적 공공 디자인의 새로운 실천 방식을 보여준 Hypotopia 프로젝트도 인상적인 사례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의 6번째 규모의 Hypo 은행이 여러 국가와 공모해 각종 돈세탁 창구로 활용되다가 파산에 이르게 되자 오스트리아 정부에서는 스페인의 방키아 은행처럼 190억 유로의 사회비용을 동원하여 구제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도 구설에 올랐지만 순식간에 잊혀지고 마는데, 비엔나 공과대학교 (Technische Universität Wien)의 건축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190억 유로가 얼마나 큰 규모의 사회비용이었는지를 증빙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화로 25조 원에 다다르는 이 돈이 얼마나 큰 규모의 금액인지 사람들에게 직접 피부로 느끼며, 확인해볼 수 있게 하려고, 동일 비용으로 건설할 수 있는 도시의 축소 모형을 만듭니다.
만약 정부에 25조 원의 무의미한(?) 세금을 주는 게 아니라, 이 돈을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데 운용할 수 있게된면, 이 정도의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런 이유에서 문제가 되었던 은행의 이름인 Hypo와 유토피아의 topia를 합성해서 이렇게 Hypotopia ‘히포토피아’ 라고 이름을 정했다고 합니다.
시멘트 블럭과 나무, 조경이 인쇄된 부직포 등으로 만들어 졌는데, 인구 1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1200km²의 도시의 축소 모형이며, 25조 원이면 이들이 살 수 있는 주거지와 발전소, 공장, 교통시설 등 주거를 위한 모든 제반 시설의 구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교육기관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모든 에너지는 태양광이나 풍력을 이용해서 자가 생산이 가능합니다. 2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의 가치가 느껴지나요?
<마무리하며..>
이렇게 전술적 공공 디자인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것은 선진국도 예외 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도시와 사회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려고 하는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s)과 같은 비즈니스 영역의 활동이나, 지역 커뮤니티 기반의 마을 만들기 운동과는 또 다른 맥락의 사회 참여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므로 지속가능하며, 전술적 공공 디자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문직을 가지고 있거나, 각자 나름의 생업수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각종 이해관계가 물려있는 연대(Solidarity) 속에서 착한 일을 한다는 이유아래 님비나 집단 탈도덕화에 이르게 되는 문제로 부터 자유로울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Social Design이란 전공을 시작했던 계기는 전봇대 전단광고 [link] 와 같은 소소한 문제들부터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들에서 비롯됐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연구하는 학업으로서의 접근 보다는 ‘실행’이 중요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출국전 진행했던 몇 가지 프로젝트들은 지속가능성에 있어서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생각보다 팀을 꾸린다는 것이 어려웠고, 개인적인 관찰 이상의 효과를 이끌어 내기에는 아이디어의 한계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전술적 공공 디자인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미묘하게 넘나드는 행위일 경우가 많아서, 종종 소음이 뒤따르며, 부정할 수 없는 법적인 근거들을 제시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때론 개인이나 기업의 비즈니스를 위해 상업적인 용도 [주로 광고] 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지만 않다면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석 광고 연구소의 프로젝트들 [link] 처럼 전략/전술의 조화, 기업과 정부, 시민의 협업을 보여주는 좋은 광고의 예들도 있고, 결국 실천 하는 사람들이 세상과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전술적 공공 디자인과 전략적 공공 디자인을 완전히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이든 지자체든 분명 양쪽을 다 고려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전술적 공공 디자인에 대한 실천은 도시와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시대정신이나 의무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나 위의 사례들을 본 분들이라면 새해에는 정말 사소하더라도 한 가지 정도의 전술적 공공 디자인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예제 중 일상의 반란 (Every Rebellion) [link] 은 예고편에서 이야기하는 바만 정리해봐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에 대한 대답을 던져줍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비즈니스적인 접근부터 사회운동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손에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게 어떨 땐 더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의 끊임없는 질문과 실천이 ‘전술적 공공 디자인’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ISSUU에 소개된 ‘전술적 공공 디자인'[link] 에 대한 책의 소제목을 기록하며, 글을 마무리 지어봅니다.
“Short-term Action, Long-term Change”
[주석]
[1] 전술적 공공 디자인 (Tactical Urbanism) 용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남겨 보자면, ‘어바니즘(Urbanism)’은 조경이나 건축, 도시계획을 전공 하지 않은 입장에선, 한국어로 번역해서 정의하기에 어려운 단어입니다.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Landscape urbanism), 뉴 어바니즘(New Urbanism), 그린 어바니즘 (Green Urbanism)등 전문 분야에서도 각각 주장하는 도시의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되는 다양한 어바니즘들에 대한 영문명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도시 주의’ 혹은 ‘어바니즘 운동’이라고도 말하지만 Urbanism 이라는 표현 자체에 이미 ‘운동’ 및 ‘변화를 위한 자발적 참여’에 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시 운동’이라는 정의하에 좀 더 직관 적인 표현을 빌려 ‘공공 디자인’으로 제시 했습니다.
[2] 전술적 공공 디자인을 세분화 하는 기준은 정확히 규정된 바가 없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실행된 프로젝트들을 개인적인 기준으로 분류해본 것이며, 프로젝트 성향에 따라 한가지 영역으로만 규정짓기는 어렵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추가된 참고 예제 링크] updated:2015.09.07
1.뉴욕 지하철을 위한 100가지 아이디어 – 100 Ideas for Improving the New York City Subway in 100 Days [link]
2.계단 극장 – Cinema on Stairs[link]
3.길거리를 업무 공간으로~! – Public office by Studio Shelf [link]
4.게릴라 공공 디자인 (도로표지판), EPP(뉴욕 지하철 승강장 안내사인) – Guerrilla Public Service
5.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롤리지역의 게릴라 안내 사인 – DIY Wayfinding Signs
6.Walk Bump – Forget Crosswalk Buttons, Pound the ‘Walkbump’

#05_[번역] 공유경제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일까?

공유경제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일까? by 아르튀르 드 그라베
원본 Original Link_The Sharing Economy: Capitalism’s Last Stand? [LINK] by Arthur De Grave

본 글은 기고자 ‘아르튀르 드 그라베’의 동의하에 비상업적 용도로 번역 및 공유되며, 의역한 내용들이나 오역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원문도 함께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Image: School of Hieronymus Bosch. Public domain.
개인이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과도한 소비주의에 빠져있던 과거 수십년을 돌이켜 보면, 이런 변화는 혁신적인것처럼 보인다.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는 메인 스트림을 장식하는 표현이 되었고, 그에 대한 문제들도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공유경제의 흐름은 어떻게 변할까? 새로운 동기부여 일까,아니면 새로운 착취의 방법일까? 혁신일까, 아니면 그저 비즈니스의 한 방법일 뿐일까?
문제에 대한 진단을 하기전에,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것이 있다. ‘협력 경제'(collaborative economy [LINK])와 ‘협력적 소비’라고 말 할 수 있는 ‘공유경제’는(Sharing Economy or Collaborative Consumption)는 엄연히 다르다. 공유 경제외 분산 생산(distributed production ; 지역화), P2P 금융(P2P Finance; 금융기관을 배제한 개인간의 거래, e.g.비트코인),오픈 소스와 오픈 지식 움직임(e.g.Moocs)등도 ‘협력 경제’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커뮤니티 내에서의 ‘수평적 관계’와 ‘분산된 권한’을 가지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2차 산업 혁명이후의 계급화된 조직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협력 경제의 움직임이 일어나는데는 많은 원인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 모두 열거할 수는 없고,(링크된 에세이를 읽어보길 권장한다.[LINK]) 어쨌든 과거의 경제 논리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알수 있다. 우리에겐 새로운 경제 논리가 필요하며, ‘협력 경제’가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협력 경제는 몇가지 모순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공유경제 영역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이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아마도 공유경제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 불평등 성장 시대 속의 동기부여  >
개인의 소유권을 초월하는 (Access over ownership)경제 시스템이 가능할까? 문자 그대로 그것은 ‘혁명’이다. 칼 마르크스가 지하에서 흥미로워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개념을 좀 더 가까이 접근해보면, 틀림없이 부와 재물을 축적하는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반면에 공유(Sharing)는 현재의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부를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는 개인)와 정반대되는 ‘순수한 도덕성’을 의미하는 멋진 단어로 들린다. 그 동안 우리는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이다’ ( 토마스 홉스[LINK] )라는 논리의 시대를 살아왔고, 그런 관점에서 경제와 정치 시스템을 구축해온 우리들에게 ‘공유’라는 개념은 지금까지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아왔으니, 순수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급성장하고 있는 기존 노동자들의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주는 서비스(우버나 에어비엔비등 [LINK] )들도 공유경제를 지향하고 있을까? 이 논쟁은 두가지 큰 주제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경영권의 구조에 대한 논쟁’ (공유경제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기존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독점’과 같은 유사한 노선을 탈피해서 협력적인 구조로 바뀌어야 된다는 논조)이고 또 하나는 ‘고용관계에 대한 논쟁’( 현재 대표적으로 성장한 공유경제 서비스들은 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서비스이지, 사회적 빈곤자들을 위한 고용 문제 해결을 해줄 수 있는 대책은 아니라는 관점)이다. 이 두가지 문제는 모두 공유경제가 탄생하게된 배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2008년 세계금융 위기에 대항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한 번더 변화할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제를 가장 특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평등한 경제 성장( 이게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어보길 권장한다 [LINK] ), 그리고 직업에 따른 수입의 불평등과 자본 독점 후 세습으로 인한 불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의 분배는 전체의 1퍼센트만이 부를 가지고 있는 세계1차대전 이전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인류의 문명화를 붕괴[LINK] 시킬 수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민들에게 자사 버스에 돌세례를 받았던 구글의 회장 ‘에릭 슈미트’도 불평등은 다가올 미래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가장 큰 문제가 될 것 [LINK] 이라고 했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에서도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 [LINK] 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공유경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유경제가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인지 ‘자본주의의 최후의 발악’인지 알기 위해서는 공유경제가 ‘불평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해 봐야 한다.
< 자산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가? >
협력의 관점(Collective Standpoint)에서, 자원을 개인화해서 소유하는 것 보다는 접근성을 열어 두는 것이 더 나은 것으로 보여진다. 베이비 부머 세대와 젋은 세대를 비교해보면, 젊은 세대가 좀 더 소유욕이 적어 보인다. 물론 소유 할 수 있는 기회도 베이비 부머 세대해 비해서 적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자산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라고 말한다면, 자산이 내것이 아니게 되면, 누구 것이 되냐고 반문하게 될 것이다. 18세기 유럽 계몽시대의 사람들(Aufklärung thinkers)은, 개인의 재산 소유가 본질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경비원들까지 대동해서 지켜냈다. 중세시대로 돌아가보면, 농노들은 자신이 일하는 토지를 개인 소유화 할 수 없었고, 노예들은 빌리는 토지 조차 가질 수 없었다. 때때로 누군가는 ‘소유화’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가 소유화 하지 못하도록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유경제를 향한 반발이 시작되는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과거의 방식으로 경영권을 생각하는 ‘벤쳐 투자자’들이 대부분의 공유경제 스타트 업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할때, 이렇게 배웠다. “어떤 회사든 그들의 최고 목표는 주주들의 수익의 최대화이다. 직원들과 고객은 맨 마지막이다.그리고 일반적으로 투자회수율을 극대화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객으로 부터, 최대한 많이 거둬들이는 것과 직원들에게 가능한한 적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라고 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현재의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주주들’은 평등한 관계의 이웃(peers ; 라틴어의 par에서 유래, par는 equal, 즉 평등함을 이야기함)이 아니라, ‘군주’와도 같다. 그리고 만약 당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가능한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중심에 둔다면, 높은 회수율을 거둬들여야 하는 ‘투자자에 대한 의무’와 P2P를 기반으로 ‘최대한 평등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하는 의무’간에 충돌이 발생하는건 당연하다. 결국, 언젠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된다.
< 공유는 크라우드 소싱의 다음 모델일까? >
이점이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공유경제 서비스는 기존 직업군의 파괴를 야기시킬 수 있다. 에브게니 모로조프 [LINK]같은 사람들은 공유경제는 단지 디지털 경제와 크라우드 소싱의 다음 버젼일 뿐이라고 말한다. 공유경제가 가진 좋은 동기부여와 기업가 정신에 대한 멋진 연설들에도 불구하고, 공유 경제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안정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고용ㆍ노동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ㆍ파견직ㆍ실업자ㆍ노숙자들을 총칭 [LINK] )라고 단정한다. 아직 그들 스스로 깨닿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도 그런 요소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 시스템이 엉망이 되었을때를 기억하는가? 70년대 갑작스럽게 오일 쇼크가 일어났을때 말이다. 이게 지금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image source : Economic Policy Institute
(생산직 근로자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시간당 생산성과 시급의 변화, 1948 – 2011)
인당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동안에, 실제 인금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새로운 방법이 고안 되어야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자신들이 만든것도 구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표면적으로 대출은 무한대로 가능해졌다.이 새로운 정책은 바로 ‘빚’이라는 이름이다. 결국 ‘빚’속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이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LINK]
그렇다면, 지금 부터 무엇을 해야할까? 만약 누군가 정확한 방법을 당신에게 알려준다면, 분명히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임금의 정체와 불평등이 치솟으며 신자유주의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기본적인 복지(임금 노동자들의 사회 안전과 건강보험등)의 구조에 대한 부분은 건들이지 않았다. 리프트나 우버의 운전자들, 에어비엔비의 집주인들은 ‘직원’이 아니므로 이런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런 점을 보면 현재의 공유경제라고 일컫는 서비스들은 크라우드소싱[LINK] 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회사에 귀속된 고용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유경제가 정말 크라우드 소싱일까? 모로조프는 공유경제가 유사 산업군에서 일하는 기존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공유경제가 기존 노동자들의 권리에 악영향을 미칠까?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곧 컴퓨터와 로봇이 어쨌든간에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게 될것이다. 임금 노동자들은 안전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투쟁하기 보다는 피케티가 말한 국제세(Global Tax)와 같은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며, 당신은 아마도 공유경제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할 수 없고, 단지 매력적인 모습을 가장한 자본주의의 마지막 모습일 뿐이며, 불평등 문제를 악화 시킬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 (헤겔 ) >
무엇인가 끝나기 전에 결과를 예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황혹녘에 (인간의 가장 친한 동물인)개와 늑대를 구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70년대부터 시작해서 2008년에 막을 내린 지난 경제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공유경제는 레이거노믹스[LINK]가 만들어낸 괴물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견들은 대체로 틀렸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지금 황혼녘에 있을 뿐이다. 오래된 방식의 사고법으로는 경제문제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다음에 어떤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실리콘 벨리의 벤쳐 투자가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잃을 수 있는 평등화된 P2P 경제 패러다임에 발을 담그는건 어리석은 짓일까? 혹은, 21세기판 농노를 만들기 위한 동기부여를 위한 속임수일 뿐인걸까?
아무도 정답은 모른다. 고대의 회의론자들은 판단중지(epoché ;지적인 생각 없이 물리적 실제가 실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의 방법을 이용해서 결론을 유보시켰다.
“만약 합리적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은 그만두고 당신이 보고 싶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라.”
< 그렇다면,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
‘판단중지’로 이 긴 기고문을 끝낸다는 것은 뭔가 찜찜하다. 그래서 개인적인 두가지 의견을 남겨본다.
무엇보다 ‘공유경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가능하면 자제해야한다. 그것은 뭔가 예상보다 높은 기대감을 가지게하는 속임수와 같다. 공유경제란 말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고객들로 하여금 너무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든다. 물론 ‘공유경제’는 진정한 의미의 ‘공유’라고 할 수도 없다.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혁명(Revolution)’을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혁명’은 세상을 나쁜 결과로 유도하려고 한다. 공유경제는 순수한 이타주의가 아니다. 과거 기독교인들은 핍박 받을때 사자굴에 들어가서 순교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고,이러한 행위는 수천번 반복 되었다. 인간은 ‘이타성’과 ‘이기성’을 모두 지니고 있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공유는 새로운 구매문화이고, 협력 경제에서 승리하는 법’ 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LINK]. 대기업들이 스타트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새로운 고객들을 차지 할 수 있을까? 만약 이러한 관점이 당신의 관심 분야라면, ‘커뮤니티나 수평성 기반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멈춰야 할 것이다. 만약 고조화되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협력 경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당신의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22세기를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변화는 찾아 올것이고 오직 한가지 질문 만이 유효할 것이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변할 것인가?”
[기고자 ; 아르튀르 드 그라베]
‘아르튀르 드 그라베’는 OuiShare 컨넥터 중 한사람으로써, 파리에서 활동 중이다. Ouishare는 협력 경제를 알리고, 실천하기 위한 커뮤니티이다. 아르튀르는 ‘사회를 변화시키자, 경제를 변화시키자, 모든 것을 변화시키자’라고 말한다.
[우쿠빵의 생각 ; 공유경제는 하나의 경제적인 흐름일 뿐, ‘착함’이 비즈니스에 이용되면 안될 것]
최소한 근래 읽어본 공유경제 관련 국내외 기고문들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깊이감을 보여주는 기고문이였습니다. 사회 철학적인 측면의 비판적 논조는 많았지만, 이렇게 명쾌하게 공유 경제에 대해서 집어주는 기고문은 본적이 없었습니다. 가장 강렬했던 기고문중에 한병철 교수님의 ‘친절마저 상품이 된 시대, 혁명은 없다’ 를 통해, ‘공유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서 그 다음은?’에 대한 질문은 다소 불투명 했고, 제레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조금은 긍정적인 방향에 대한 미래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현재의 ‘공유 경제’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는데는 조금은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이 기고문에서 특히 공감하는 부분은 ‘공유 경제’라는 말의 남용입니다. 새로운 경제적 접근 법으로서 좋은 의미를 갖지만, ‘착하다’라는 도덕적 관념을 사회적 기업이나, 공유 경제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슬로건’으로 이용하면서, 스스로도 혼란에 빠지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런 영역에서 활동하는 많은 기업, 단체들이 ‘재능 기부의 탈을 쓴 재능갈취’일삼고 있으며,무급인턴이나 직원들에 대한 말도 안되는 보수로 노동자로써의 대우가 개차반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도덕성을 절대 상품화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엔 사회적 기업이나, 공유 경제 기업 외에도, 이미 우수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해오던 기업들이나 사회에 기여하려는 곳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홍보나 마켓팅 용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CSR이나 CSV의 경우도 잠정적으론 기업의 홍보 수단일 뿐이며,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하는 규모의 CSV 관점에 100% 동의 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국내 굴지 기업들은 사회 공헌 활동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자랑하면서, 정작 직원들에 대한 대우는 개차반이거나 노조의 활동을 막는 모습들을 보면, 쉽게 그런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나,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칭찬해야할 건 칭찬해야지 않나’라며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근래의 땅콩 회황 또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구글식 사내 문화를 가진 기업’ 이라며, 사내 복지를 주구장창 강조하는 ‘꿈의 직장’들이 소개 되고 있고, 많은 친구들이 워너비 회사로 손에 꼽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엄청나게 그런 점들을 홍보합니다. 분명 다른 기업들에게도 ‘경쟁’요소가 되서 사회적인 변화를 유발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카더라’ 소문들은 실제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부당성도 상당하다라는 점입니다. 그런 사내 복지문화를 광고에 활용한다는 것은 이 사회나 기업문화가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음을 시인하는 꼴이기도 합니다. ‘친절마저 상품이 된 시대’란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결국 기업의 윤리와 도덕성이란 ‘기업가 정신’이나 ‘공유 경제’, 혹은 ‘구글식 사내 문화’라는 표면적인 이야기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과거 국내 대기업들 조차 기업의 덕목 중 ‘사회와 공익에 기여한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기업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지, 정작 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일 경우가 부지기수 입니다.
누가 더 공익에 기여하는 기업인가에 대한 평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기업’, ‘공유 경제 기업’ 이라는 타이틀과 CSR이나 CSV에 쏟아 붇는 비용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가들, 특히 작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분들부터, 자본주의의 표면적 망상에서 벗어나서, 기업가로서의 ‘인간적인 도덕성’을 먼저 고려한다면, ‘착한 기업’이라는 딱지는 더 이상 자랑할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필자 아르튀르가 밝히다 시피, 공유 경제나 협력 경제는 당연히 벌어질 수 밖에 없는 패러다임 입니다. 특히 대중을 향한 서비스들은 보다 협력적이고, 소유권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흘러 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의 도덕적 우월함을 드러내는 용도로 이용되서는 않되며, ‘친절’과 ‘착함’을 표면적인 홍보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앞서, 인간에 대한 철학적, 도덕적, 윤리적 사유를 본능적으로 탑재했거나, 그러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기업가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길 기대해봅니다.

#04_[번역] 주기율표로 알아보는 제품 디자인의 비밀

#04_[번역] 주기율표로 알아보는 제품 디자인의 비밀
본 글은  core77의 동의하에 게재하며, 번역상 오류가 있는 부분은 댓글이나 메일 주시면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문맥상 의역을 한 곳들도 제법 있으므로, 링크된 원본 글을 확인해보시길 권장합니다.
>원본 글 링크 Original report Link<
A Periodic Table of Form: The secret language of surface and meaning in product design, by Gray Holland
우선 본문 내용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서론을 남기자면, ‘제품의 형태가 무엇을 말하는가?, 왜 이렇게 디자인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굉장히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해줬던 글입니다. 원본 글의 댓글들을 보면 대체로 많이 공감한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사물의 표면(surface)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꼭 글쓴이가 말하는데로 분류하기엔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글은 디자인을 모르는 분들부터 디자이너들까지, 제품 디자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품/산업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현업 디자이너들의 경우, 교수들님들이나 클라이언트들에게 ‘감성’만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실어주는 배경이 될 수 있을만한 지식이라 꼭 일독해보시길 권장합니다.
>surface는 형태, 표면으로, form은 형태,상태,상황의 의미로 문맥에 맞춰 의역했습니다. 더불어, 원본 글 댓글에 나와있는 톰슨의 책 < On growth and Form>아르헨티나 연구진의 논문<CONTINUITY IN SPATIAL SURFACES FOR INDUSTRIAL DESIGN>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제품 디자인을 위한 주기율표> ; 제품 디자인의 형태에 숨겨진 의미 by 그레이 홀란드
많은 사람들에게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왜 그렇게 힘든 걸까요?
흔히 제품 개발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 디자인과 설계(engineering)를 분리해서 따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설계의 경우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정량적인 평가가 가능한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디자인의 경우 대체로 그렇지 못합니다. 설계의 경우 정량화된 평가를 통해 비교적 쉽게 ‘객관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그것은 설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디자인은 ‘직관적’입니다. 경험을 기반으로 하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방법으로 이해되고, 때때로 극적인 감정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것은 객관적인 평가를 힘들게 합니다. 결과물을 ‘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디자이너를 위한 ‘고유한 언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품 디자인의 형태를 설명할 때,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편견이 따라다니게 됩니다.

 

“성게나 가시복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잔뜩 가지고 있는 생명체의 표면과 반응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명백합니다.
굳이 전두엽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consumer)가 제품을 선택을 할 때 얼마나 감성적으로 대했는지는 쉽게 잊히지만, (디자인을 보고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분석적인 심리’가 디자인을 이해하는 공식화된 언어로써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분석적인 심리’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정의할 수 있는 구조화된 논리에 따랐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디자인에 대한 ‘감성적인 반응’은 고차원의 의식으로만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미숙하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제품 개발에 있어서 디자인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장벽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관점을 초월해서 디자인을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인 시스템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형태(form)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제품의 구매, 물건의 선택에 대한) ‘감성적인 반응’의 합리화를 위한 첫번째 단계로써 우리 마음을 휘젓어 놓기도 합니다. 자연적인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장엄한 메타세쿼이아 숲 속을 걷고 있는 중이라면, 아마도 깊은 평온함을 느끼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숲 속을 걸어가는 동안 가녀린 수풀의 잎사귀들이 손끝에 느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사슴을 발견하고, 심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정도로 놀랍니다. 이런 상황(forms)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은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본능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감정을 정의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은 특별한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본능적으로 존재해온 감정들입니다.

 

제품 표면의 연속성이 소리 없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
이 글에서 저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와 ‘인간이 만든 물체’가 가지고 있는 ‘형태’와 ‘디자인’이 두 가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나는 ‘맞닥들이게 될 경험을 예상하게 해주는 전달자(messenger)로서의 역할’, 그리고 또 하나는 ‘예측한 경험이 실제로도 벌어지게 해주는 역할’ 입니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 벌어지게 될 상황에 대한 ‘예상’과 ‘실제 경험’이라고 말 할 수 있으며, 두 가지 역할이 서로 일치 하지 않을 때, 피상적이거나 어색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예상’과 ‘실제경험’이 일치하는 사례를 자연물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 다트 개구리의 화사한 색과 무늬는 적들을 독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명백합니다.
– 모나크 나비의 화려한 무늬 또한 독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적들의 공격을 단념시킵니다.
– 성게나 가시복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잔뜩 가지고 있는 생명체의 표면과 반응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명백합니다. 굳이 전두엽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공작의 깃털이 의미하는 웅장함은 확실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 내 유전자는 다른공작들 보다 우월해, 그러니깐 내 짝이 되어줘’ 처럼 말입니다.
– 식물의 개화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함은 생태계의 진화를 설명하는 작은 척도가 됩니다. 자연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경이로운 모습 입니다.
– 사마귀는 다른 자연물을 모방해서, 곤충들을 유혹합니다.
이런 예제를 살펴보면, 디자인이 자연 속에서 생명체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 해볼 수 있고 구두로 설명하기 이전에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언어 기반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시각적 디자인의 힘’과 ‘비언어적인 표현 방식’은 쉽게 무시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탄젠트한 형태(접선 연속성의 표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형태를 설명할 수 있는 의미가 숨어 있다면, 어떻게 ‘자연물’과 ‘인간이 만든 물체’에 그 의미를 드러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형태가 가진 의미를 자연스럽게 해체해보고, 기술적으로 단순화된 ‘기하학적인 분류’를 통해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류에 앞서, 아이러니하게도 CAD에서 통용되는 세 가지 표면의 연속성을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표면의 연속성에 대해 알아보면,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CAD에서 위치 연속성(Positional Continuity)은 C0 또는 G0으로 불리며, 두 개의 면이 만나서 모서리를 생성됩니다. 접선 연속성 (Tangential continuity)은 C1 또는 G1이라고 불리며,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두 개의 면을 연결하게 해줍니다. 이것은 하나의 선이 두 개의 원호에 연결될 때 최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연속성은 대부분의 모델링 프로그램에서 모깍기(Fillet) 기능으로 불리며, 사용됩니다. 두 표면간의 연결이 부드럽기는 하지만, 원호와 선이 만나는 곳에는 면의 끊김을 보여주는 라인 (break line)이 생깁니다.
만곡 연속성 (Curvature continuity)은 C2 또는 G2라고 불리며, 조금은 설명하기 복잡한 표면입니다. 이것은 두 개의 연속되는 표면의 곡률(the rate of curvature)이 동일할 때 나타납니다. 시각적으로 한 개의 표면이 끝나고 전혀 다른 표면이 시작된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CAD 용어에서는 ‘A 클래스 표면처리 (class A surfacing)’라고도 하는데, 주로 서페이스(표면)기반의 모델링 프로그램인 Alias, Rhino, Catia 등을 이용해서 만들어됩니다. 만곡 연속성(C2)을 가진 표면의 최고의 장점은 다양한 표면들을 자연스럽게 한개의 표면처럼 보이게 이어주기 때문에 반사체일 경우 끊김없는 표면 반사가 가능하며, 이런 표면은 고급스러운 조형이 요구되는 자동차 외형 디자인에서 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곡 연속성(C2)표면을 기반으로 한 렌더링은 구두로 하는 어떤 설명보다도 시각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통해 세 가지 표면의 연속성의 차이를 확인해보길 바라며, 특히 ‘접선 연속성(C1) 표면’의 경우, 곡면과 만나는 면의 접점과 줄무늬를 적용한 반사면을 보고, 면의 흐름이 어떻게 끊어지고 바뀌는지 확인해보길 바랍니다.

이처럼, 자연물을 살펴보면 다양한 위치 연속성(C0)과 만곡 연속성(C2)의 표면을 지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모서리, 야자나무의 잎, 철갑도마뱀의 비늘에서는 위치 연속성(C0)을, 돌고래의 피부, 사암 퇴적물, 우아하게 개화된 꽃잎에서는 만곡 연속성(C2)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두 가지 표면의 연속성은 인간의 감성적인 반응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위치 연속성(C0)을 가진 표면은 정밀성,정확성,위험성,구조성,신뢰성 등을,
만곡 연속성(C2)을 가진 표면은 세련됨,고귀함,유동성,우아함,고상함 등을,
하지만 접선 연속성(C1)을 가진 표면은 자연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형태의 의미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표면의 연속성에 대한 분류를 사람이 만든 물건들에도 적용해 보겠습니다. 특히 운송기기에서 찾아보기 쉽습니다. 위치 연속성(C0)의 표면을 지닌 ‘스텔스기’나 ‘캐딜락’의 형태는 ‘위협성’과 ‘정밀성’을 드러냅니다. 만곡 연속성(C2)의 표면을 가진  ‘D-type 재규어’나 ‘B-1 폭격기’는 매혹적인 우아함을 드러냅니다.
자연물에는 없는 ‘접선 연속성(C1)의 표면’을 가진 제품들의 경우 특징적이고 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능성, 유용성, 효율성, 실용성, 목적성 등과 같은 것입니다. 디자인에서 SUV는 ‘목적 지향성’을 말하는 대명사로 통합니다. ‘오리지널 랜드로버’나 사촌격인 ‘LR3 디스커버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송기 CV22’의 디자인도 ‘기능성’을 고려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공기역학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형태라고는 할 수 있지만, 공기역학은 산업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미친 것이 아니며, 철저하게 실용적인 목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제품 디자인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표면의 연속성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치 연속성(C0)의 표면을 가진 제품들은 대체로 ‘정밀성’과 ‘신뢰성’을 요구하는 제품 들입니다. 반면에 만곡 연속성(C2)의 표면을 가진 제품들은 ‘우아함’과 ‘세련됨’을 요구하는 제품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접선 연속성(C1)의 표면을 가진 제품들의 경우, 대부분의 소비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물에 비해서,
접선 연속성(C1)을 가진 제품들은 형태 본연의 아름다움을 덜 고민한 것입니다..”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제품이 이런 표면을 나타내는 언어들을 고려했을까요? 얼마나 많은 제품이 (모델링 소프트웨어의 한계상) 접선 연속성(C1)으로만 연결된 표면으로만 이루어져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제품들이 사용자의 경험을 고려해서 디자인 되었을까요?
DeWalt社의 전동 드릴이나, Emeco社의 의자, 접선 연속성(C1)의 표면을 가진 제품들의 포르노 스타와도 같은 Dyson社의 진공 청소기는 ‘기능성’을 표현한 제품으로서 충분히 합리적인 형태로 보입니다. 하지만 휴대폰, MP3플레이어, 컴퓨터, 다목적 가전제품등 대다수의 소비재들은 형태에 있어서 뚜렷한 차별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물에 비해서, 이러한 제품들은 형태 본연의 아름다움을 덜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제품은 도구의 역할을 하므로 이런 접선 연속성(C1)을 가진 표면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도 주장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제품은 사람의 손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오직 설계의 관점으로만 만들어지고, 미묘하고 세밀한 형태를 고민하는 대신, 팔기 좋은 형태로 시장에 나와 선반 한쪽을 차지하게 됩니다.

자, 이제 얼마나 많은 제품이 설계, 비용, 기간의 제약으로 인해 제대로 디자인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생산은 되었지만, 디자인에 대한 고려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사용성이나 질 좋은 경험보다 ‘기능’과 ‘사양’이 개발 과정의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용자의 경험을 측정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자를 우선으로 고려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어려웠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합리성’에 따라 오직 ‘기능성’에만 집중했던 제품 개발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합리성’의 기준만 따른다면, 제품의 가치를 정량화 할 수 있는 기준으로만 판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모델링 소프트웨어의 (한계에) 의해서 접선 연속성(C1)의 표면을 가진 제품들이 무수히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개발 프로그램’과 ‘마케팅’에 의해 고객들의 경험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접선 연속성(C1)의 표면은 순수한 자연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형태일 뿐입니다. 제품 개발에 있어서, ‘기능적인 형태’를 추상화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20세기 동안 디자인 기술, 제조, 생산과 관련 된 것들은 ‘심리적인 구조화’에 대한 고민 없이 CAD가 낳은 기하학적인 선들과 원호에 의해서만 진화되었습니다. 그 근원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allows Function)’로 정의되는 ‘바우하우스’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저도 그러한 논리를 구체화한 실용주의(pragmatism)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제한적인 주장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연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논리였으며, 세상의 가치를 한정적으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형태 주기율표 (The Periodic Table of Form)
그렇다면, 디자인은 이야기 할때, 이유에 대한 고민이나 이론적인 해석 없이 영감에만 의존해야 할까요? 혹은 자연 세계의 규칙을 따라야만 하는 걸까요? 형태가 가지는 의미를 알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Alchemy Labs에서는 형태의 종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표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우선 기능이 있을 것만 같은 가상의 형태(하단 이미지 C0 참조)로 시작해봤습니다. 간단하지만,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형태입니다. 하지만 어떤 기능도 포함되지 않은 형태입니다. 그리고 세 종류의 표면 연속성을 가진 형태(하단 이미지 C0, C1, C2 참조)를 기본으로 배치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 처럼 기본 형태들을 섞어서 새로운 형태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과적으로 형태의 주기율표라고 부를 수 있을법한 도표를 만들어 냈고, 복합된 의미를 분석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원소 주기율표 처럼 (형태적인)비율을 얼마든 조정할 수 있고, 혼합할 수 도 있으며, 불순물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 형태 주기율표를 이용하면, 방 안에 있는 모든 물체의 형태를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도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표면이 혼합된 확실한 예제들을 분석해보고, 형태 주기율 표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검증 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형 맥북프로에 비해 , 2001년형 파워북은 어딘가 단조로워 보입니다.”
우선 미공군의 최신 기종인 ‘F-22 랩터 전투기’ 부터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전투기는 스텔스 기술과 최적화된 공기역학의 원리가 혼합돼 있으며, 각진 위치 연속성의 표면(C0)과 우아한 만곡 연속성(C2)의 표면을 충실히 동시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리벤션’ 또한 F-22 처럼 위치 연속성 표면(C0)과 만곡 연속성(C2) 표면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이접기를 해둔 것 처럼 매끄러운 표면은 특색있는 정밀함을 드러냅니다.
애플의 ‘파워북’은 위의 예제들과는 정반대되는 형태로써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서리는 큼직하게 라운드져 있고, ‘바우하우스’의 ‘미니멀리즘’을 나타내는 듯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미묘한 만곡 연속성(C2)의 표면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달콤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디자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사용하기 쉽고, 지적이며, 우아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애플은 이렇게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으며, 이런 부분이 광적인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러한 애플의 차별화된 제조와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보면, 경쟁업체들보다 고객들을 더 고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플 2008년 뉴 맥북프로의 디자인은 얼마나 더 진화했을까요? 우선 미니멀한 접선 연결성(C1)의 표면이 보이고, 만곡 연결성(C2)의 표면이 적절히 침투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8년 버젼에는 위치 연결성(C0)의 표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절제된 형태는 ‘보다 성숙하고 정밀한 감성이 포함된 우아함’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표면 재질(알루미늄)로 부터 전달되는 강력한 신뢰감은 오늘날 노트북 시장에서 가장 힘든 제조 공정임을 대변합니다. (애플의 알루미늄 제조공정에 대한 열의는  향후 ‘맥북에어’의 개발과 생산을 가능케 하는 토대가 되고 다른 제조업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LINK)

만약 디자이너가 제품 디자인에 대한 ‘감성의 본질’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떳떳할 수 없다면, 아무리 열정적으로 설득하려고 한들, 디자인 컨셉의 절반은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제품 개발은 디자인과 설계의 보다 ‘조화로운 접근’을 필요로 합니다. 실제 ‘자연으로부터 도출한 잘 버무려진 인식’과  보다 ‘깊이 있는 감성과 정신’을 요구하는 창의성, 척도 가능성, 그리고 가치성을 필요로 합니다.
 
형태 주기율표는 확실한 목표를 지향합니다. 세 가지 표면 구성법을 이해한 모델링, 디자인이 가진 무형의 특성을 논리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시작점, 형태가 가지고 있는 감성적 의미의 측정, 그리고 무의식적인 선택에 대해 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제품 개발에 있어서 절반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정량 가능한 것들(설계,마켓팅)에만 집중하기 보다, 완전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서, 소비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디자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열린 사고는 ‘이성’과 ‘감성’을 연결해 줄 수 있으며, 그런 ‘목적 의식’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합리적인 개발 과정으로 인해 손에서 놓친 (주관적인 판단으로만 남겨둔 디자인에 대한) ‘아름다움의 진실’과 ‘진실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디자인의 본래 의미를 찾아서 진실한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Gray Holland는 샌 프란시스코의 디자인 에이전시 Alchemy Labs의 대표이자 설립자입니다. Alchemy Labs은 디자인, 브랜드, 비즈니스를 통합하여 현실화 시킵니다. Alchemy Labs의 모든 식구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Laura McFarland에게 특히 감사의 인사를 남깁니다.
*형태 주기율표는 고화질의 PDF 파일로도 다운로드 가능합니다.Link

 

[우쿠빵의 생각 – 디터람스와 샤오미, 그리고 애플의 최근 제품들을 살펴보면….]
이 기고문이 말하는 바를 요약하자면, C0,C1,C2라는 제품 표면의 연속성을 이해하고, 제품 디자인에 최대한 반영하면, 좋은 제품 디자인, 훌률한 개발 과정이 될 수 있다 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글의 말미에 나오는 음양의 조화와도 같은 ‘디자인’과 ‘설계’의 완벽한 조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품 디자인을 단순히 감성의 영역, 설계를 이성의 영역으로 분류해서 이분법적으로 보기보다는 제품 디자이너는 보다 이성적인 사고가, 엔지니어는 보다 감성적인 사고가 필요함을 말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소위 ‘Design Thinking’이라고 부르는 사고법과 연결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기성 디자이너에게 부족한 부분은 바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이며, 디자인 새내기들이 UI나 UX와 같은 논리에만 집중하는 동안 미적인 부분은 놓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또한 본질적으로 ‘기능성’만 따른 제품들은 아름다움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디자이너들은 서페이스 모델링을 할때 좀 더 심미성을 위한 고민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말합니다. 현장에서 기구팀과 협업 시 양산성의 이유로, 표면의 형상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기도 한데,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의 심미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제품 표면에 대해 과학적인 이해가 가능하면, 클라이언트들의 부정확한 요구에 대해 ‘이유있는 디자인’을 통해서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줍니다. 사출이 어렵다거나,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주관적인 이유로 디자인 변경을 요청할 때, 보다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길 바래봅니다.
한편, 디자인에서 ‘미학적 고려’는 ‘기능적 고려’ 다음이여야 한다는 루이스 셜리반의 Form fallows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이라는 말과는 상반되는 주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나친 기능적 고려가 미학적 형태와의 연결성을 해친다는데 있습니다. 즉, 기능은 기능대로, 형태는 형태대로 완전히 별개의 요소로 디자인되어 출시되는 현재 대부분의 제품 디자인의 오류를 지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라운社의 제품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던 ‘디터 람스’의 경우에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보면, 접선 연속성(C1)의 표면보다는 위치 연속성(C0)의 표면에 가깝게 디자인 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대량생산과 기능성을 의미하는 무분별한 탄젠트라인(C1)을 절제했기에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깊이있는 고민이 녹아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은 근래의 사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기업 ‘샤오미’인데, 발뮤다社의 공기 청정기를 모방한 듯 하지만, 발뮤다보다 훨씬 더 대끈하게 정리된 형태를 보여줍니다.[Link]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제품을 카피할 경우 봉착하게 되는 문제가 바로 오리지널 제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저렴함’이 도드러지게 된다는 건데, 샤오미의 경우 스마트폰의 UI [LINK]에서 보여준 것 처럼, 미적인 부분과 논리적인 부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S전자보다 디자인에 대한 본질을 애플만큼이나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본 글은 기고된지 5년이나 된 글이지만, 여전히 애플의 디자인에서는 표면의 연속성에 대한 깊이있는 디자인의 요소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방법론과 툴킷, 그리고 신기루의 글에서 예로 들었던 황금비율의 애플 로고에 대한 허상만큼이나, 주관적인 글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폰3GS의 경우 만곡 연속성(C2) 표면을 후면에 사용해서, 기능성 위주의 접선 연속선(C1)의 표면만을 사용하던 경쟁사들의 휴대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욕조 같은 형태’를 제안합니다. 물론 당시 이러한 만곡선 형태의 디자인은 다른 제품들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이폰4의 경우 철저한 위치 연속성(C0)의 표면을 사용해서 알루미늄 가공의 한계와 더불어 자연물에서 볼 수 있는 정밀성, 정제성을 통해 감성적인 만족감의 극을 보여줍니다. 제품 디자이너들 사이에선 어떻게 설계했을까, 어떻게 이런 금형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렇게 양산했을까 등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 내며, 또 한번 디자인과 제조의 혁신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아이폰6의 후면 디자인이 처음 공개됐을 때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흔하디 흔한 접선 연속성(C1)의 표면을 가진 디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두께를 줄이려는 기능성을 따르면서 후면의 형태가 가진 감성적인 만족감은 줄었지만, 전면 디스플레이에 부피감을 줌으로써, 만곡 연속성(C2)의 표면을 전면 모서리에 집어넣는 센스를 보여줍니다. 앱둥이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시 ‘애플’이라는 말을 내뱉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UI와 UX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붐은 디자인이 얼마나 논리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제품 형태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과거에 비해 무덤덤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4년 들어 IoT가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많은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제품 디자인이나 생산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품이란, UI/ UX뿐만 아니라, 형태 그 자체로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03_디자인 방법론과 툴킷, 그리고 신기루

“Design Thinking”,”HCD”,”OOOToolkit”….It’s Amazing!
대략 2-3년 전부터, “디자인 씽킹”을 필두로 다양한 방법론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거론되며, 각종 Toolkit 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디자인 방법론 들이 있었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정리돼서 디자인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비즈니스, 사회혁신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확산되고 있다.
“무료 공유에, 무료 번역까지, 감사한 일이지만….”
이렇게 해외에서 시작된 방법론과 툴킷들의 번역과 소개는 감사한 일이며 환영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의 디자인,비즈니스,사회혁신 관련 툴킷들은 여전히 번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거나, D.School이나 IDEO의 방법론들의 리비젼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건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해외의 사례들을 비교해보면, 일정부분 리비젼된 부분들의 흔적은 마찬가지로 보이지만, 고유의 단어와 양식을 채용하는 것을 보면, 이런 툴킷과 방법론 개발에 적잖은 에너지를 쏟았음을 알 수 있다. – 일례로 자사의 비즈니스에 오픈 툴킷이나 플랫폼을 연결하여, 다양한 방법론을 선보이고 있는 미국의 디자인 컨설턴시 Frog Design의 Collective Action Toolkit IDEO의 HCD Toolkit, 그리고  Arup의 Drivers of Change 등을 비교해 보길 바란다.-
“한국의 사교육 문화, 그리고 디자인 방법론과 툴킷의 만남….”
국가 예산의 10%를 넘어서는 규모를 사교육에 투자하는 한국답게 여전히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시작 단계의 사업체(스타트 업, 컨설턴시 부터 정체 모를 곳들까지)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이러한 오픈 툴킷을 이용하여, 본래의 사업과 별개로 각종 강의를 통해 주 수입원으로 활용하는 곳들도 많아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미성 년들에게 수십 년간 불어왔던 사교육 바람이 창의 교육이란 명목으로 직장인들에게까지 불고 있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성인판 방과 후 교육활동의 전성기 시절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들에게도 더욱 정리된 방법론들을 습득할 기회이고, 일반인들도 디자이너들의 사고방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교육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좋은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더군다나, 오픈 소스로 공개된 이런 툴킷들은 미트-업 같은 채널들을 통해 자유롭게 연습해보고 공부하는 해외와는 달리, 한국에선 퍼실리테이팅 비용이란 이유로 교묘하게 유료 강좌로 강연하는 곳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모국어가 한국어인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Lego Serious Play 경우를 예를 들자면, 이미 숙련된 강사들이 정상적인 강의를 진행하는 곳들도 있는가 하면, 단, 3일 과정으로 진행된 공인 퍼실리테이터 교육 과정 이후 아무런 경험도 없이 유료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사교육의 왕국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창의 교육도 좋지만, 언제까지 방법론 교육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완성도 높은 방법론들을 활용한 창의 교육이 전반적인 문제 접근과 해결, 혹은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개선에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사이비 강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는 힘들테고 결국 사용자가 전문성 있는 강의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또는, 오픈 툴킷을 활용한 강좌의 경우, 비싼 돈 들여가며 어쭙잖은 강사들을 쫒아다니기 보다는, 회사나 학교 등에서 직접 그룹을 만들어서 여러방면으로 실험해보며 배우는 것이 스스로는 물론 조직에도 훨씬 더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이 부분은 디자인 씽킹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IDEO의 CEO 팀 브라운도 염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디자인 씽킹이라는 방법론을 퍼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없이 스스로를 ‘디자인 씽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언급한다.-
특히 한국에선, 사용자들도 방법론과 툴킷의 신기루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로서의 성공적인 실제 사례들을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여서,프로젝트의 우수한 결과물로 상황에 적합한 ‘커스터마이징 된 메뉴얼과 같은 툴킷’들을 만들어서 유사 분야의 본보기가 되는 사례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서비스 디자인 블랙 퍼스트에서 공유한 자료 중 프로젝트를 통해 자체적으로 찾아낸 방법론과 툴킷에 대한 발표를 확인해보길 바란다.
“꿈보다 해몽….”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부분은 방법론들을 거론할 때 보여주는 예제들에 대한 환상이다. 심지어 쌍팔년도 예제들을 보면서도, 환호성을 지른다. 그것은 마치 뒷마당에 있는 나무 이야기를 하는 무당의 끼워 맞추기식 점술이나 다름없다. 애플의 로고 디자이너 로브 야노프의 인터뷰를 회고 해보자. 정작 디자이너 본인은 감으로 그린 한입 베어 문 사과 모양인데, 황금비율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판타지 소설 만들기에 여념 없다. 성공한 모델에서 나온 방법론과 툴킷은 있지만, 그 툴킷으로 성공한 모델들이 극히 드문 이유를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그러한 방법론과 툴킷들을 이용한 최신 성공 사례는 소개해 주지 않는다. 왜일까?
몇일 전 강의 시간에 Participatory Design에 대한 토론 중에 Faked participation 이라는 주제도 있었다. 말 그대로 ‘참여형 디자인을 가장한 훼이크 디자인’이란 이야기다.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는 디자인들은 많지만, 성공적인 디자인의 확산을 위해서는, 좀 더 정직하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 성공사례가 확산이 되느냐, 안되느냐를 보면, 그 프로젝트가 표면적으로 홍보만 잘한 것인지, 질적으로 우수하고 정직한 것이었는지가 어느 정도 판가름나기 마련이다.
“툴킷과 방법론은 지름길로 가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소위 천문학적인 단위의 과외를 받고 공부하는 대치동 아이들과 다르게, 영재들이 말하는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 라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왜 그 좋은 툴킷들을 이용하면서도, 한국에는 성공적인 사례가 아직은 이렇게 드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교육자를 자처하고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지는데, 교육을 잘 받은 학생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사이비 교육자들을 막을 수는 없기에, 여러분이 CEO나 직장인이라면 사업과 프로젝트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길 바라고, 디자이너라면 방법론을 지나치게 탐닉하기 보다, 실제 사례를 통한 적용이나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방법론’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를 바란다.
“방법론도 좋지만, 이제는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
더불어, 사회혁신 쪽을 보자면 S생명에서 캠페인으로 진행한 마포 대교의 자살 방지 환경 디자인부터, CPTED(범죄예방디자인)이란 명목으로 진행한 마을 디자인까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금 더 성공적인 사례를 만드는 데 있어서, 방법론을 넘어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공공 부문 서비스에서, 그 서비스의 초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업체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질적이든 양적이든 유지 보수비가 발생하는 이상 수익의 극대화가 1순위인 기업에서는 지속가능성을 주민들의 몫으로 미해결 과제로 남겨두거나, 가성비 때문에, 아무런 지식 없는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함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교육자, 퍼실리테이터라고 말하며, 사이비 교육을 하는 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자세다.

#02_지속가능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디자이너로 살아가기에 고민중인 대학생들과 직장생활 초년생들을 위해 경험을 공유합니다.
어디까지는 수 많은 디자이너들 중 한 사람의 관점이므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이 도무지 않보인다며, 실마리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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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시작하며,

“디자인 에세이?”
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디자인 트렌드부터 사회이슈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노동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게재할 예정입니다. SNS를 통해 공유하는 글들의 내용들이 길어짐에 따라, 스스로의 생각의 변화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 시작해봅니다.
전문적인 글쟁이도 아니고, 이 블로그에 게재되는 글들에 대한 생각들은 포스팅되는 시점 이후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이므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넓은 시각을 가진 디자인 노동자가 되기를 바래보며, 토론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로 게재할 내용들은,
1.적정기술,사회혁신,서비스디자인등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
2.함께 나누기 좋을 만한 저자의 허락된 영문 번역 에세이
등 입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2월 겨울즈음, 비엔나에서,🙂